<대도시의 사랑법>의 지은이 박상영 작가의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쑬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실려있어서 빌려오게 된 책이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도 수록된 여러 단편 중 이 소설부터 읽게 되었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은 여전히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또 가끔은 소설 속 묘사가 받아들이기에 익숙치 않다.
하지만 소설이 끝난 뒤 또 다른 그의 작품을 읽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는 원천은, 그의 문체다.
세심하고 또 꼭 하필이면,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다.
이성애자 ‘주제에’ 동성애를 소재로, 동성애는 특별한 것이며 때문에 그들의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식으로 소비해버리는 오감독과 주인공의 대립,
그리고 왕샤와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사랑의 모양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p.314
함께 배를 잡고 웃었다. 입꼬리가 활짝 올라가는 그의 미소는 내가 잘 아는 모습이었다. 내일 모든 걸 다 잃어버릴지라도 일단은 웃고 보자는, 대책 없이 해맑은 그 얼굴. 그 빛나는 모습으로 말미암아, 그 시절의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웃는 왕샤를 껴안았다. 왕샤도 나를 꽉 안았다. 우리는 어느 아파트 단지의 상가에서 서로를 안은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중략)...
그렇게 우리는 술에 취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취해야 한다는 주사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다시금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성적 욕망이 걷힌, 맑고 투명한 관계로 남아 인생의 가장 고단한 시절을 함께하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도 누구보다도 넓고 단단한 그의 등을 보며 나는 그 시절의 그와, 나아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p.331
박상영이 결국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 시절의 그와, 나아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 자신과 화해”하겠다는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일이라면, 지나간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고 또 화해에 실패하고야 마는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보편적인 예술이 된다.
p.316
자기 연민이나 광기가 예술이 조건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가 됐어야 했다.
p.323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의 은사님이 해주신 말을 떠올리곤 했다.
너에게로 향하는 절경은 너만이 펼칠 수 있단다.
그런데 선생님 어쩌죠. 일단 길을 내놓고 보니 그곳은
정말 참상이군요.
p.324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아름다웠던 배우가 죽어 없어지고,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쫓겨나고 심지어는 사형까지도 당하는데, 나는 이곳에 앉아 개똥같은 감정 타령이나 하고 있다. 나 자신과 타인의 불행을 연료 삼아 글을 쓰는 내가 혐오스럽다가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더 심한 청승을 떠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새해 목표를 징징거리지 않기로 정했는데 이런 곳에서조차 징징거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웃기지만,
뭐 어쩌겠어.
그게 나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데. 술 먹고 택시를 타면 눈물이나 짜고, 과잉된 자의식에 사로잡힌 채 글을 쓰는, 한없이 평범한 나날들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그 언젠가는 소설 속 주인공과 왕샤처럼 ‘그’와 나도 맑고 투명한 관계로, 인간 대 인간으로 진심을 담아 인생의 한 컷에 실릴 수 있을까?
미움, 질투, 오기 없이, 정말 “투명한” 마음으로 말이다.
자기 연민이 이따금씩 솟구치는 밤을 지날 때마다 ‘아직’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씻어내는 방법은 연락하지 않고,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지 않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가 누구와 만나고 시간을 내는지 알게 될 일도, 그 대상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힘들어할 일도 없을테니까! 아- 얼마나 해피할까!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 가득했던 미움이 사라지고,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내 안의 모든 나와 화해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을 돌아봤을 때 그저 싱긋이 미소짓고만 싶다.
나만의 이 이야기가 보편적 예술로 남게되는 그날까지, 실컷 징징대고 청승 맞아보자! 하지만, 너무 아프지는 말자- ok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