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학습지를 만들고
“잘” 가르치기 위해 고민하던 나에게
대학 동기가 웬 논문 하나를 메일로 던져준다.
그리고 그 논문이
한 제자를 발견하게 만들고
그 제자는 나의 교육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된다.
마법 같은 일이
바로 이 학술지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산과 염기는 초등학교부터 배우는 아주 친숙한 주제이다.
흔히 물에 녹아 수소 이온을 내놓으면 산, 물에 녹아 수산화 이온을 내놓으면 염기라는 정의는 아레니우스 산-염기 개념에 기반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화학 평형에 대해 배우고 산과 염기 단원이 등장하는데, 바로 아레니우스 산-염기 개념보다 더 넓은 범위의 설명 체계를 가진 브뢴스테드-로리 산-염기 개념을 도입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뢴스테드-로리 산-염기 개념은 아레니우스 산-염기 개념과는 달리 가역반응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역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선 평형 개념이 필수다.
또한 아레니우스 산 염기가 물질이 물에 녹았을 때 수소 이온을 내놓느냐, 수산화 이온을 내놓느냐에 따라 산 또는 염기를 판단하는 물질 자체에 초점을 맞춘 물질적 관점이라면,
브뢴스테드-로리 산 염기는 물질이 어떤 물질과 반응하느냐에 따라 수소 이온(양성자)을 줄수도 받을수도 있는 과정적 관점에서 산과 염기를 판단한다. 다른 물질과 반응할 때 수소 이온(양성자)을 주면 산, 수소 이온(양성자)을 받으면 염기로 정의한다.
뿐만 아니라 아레니우스 산 염기는 산과 염기가 반응한 후 산에서 나온 수소 이온과 염기에서 나온 수산화 이온이 만나 물이 생성되고, 산의 음이온과 염기의 양이온이 만나 염이 생성되는 것을 중화반응으로 정의한다. 즉, 아레니우스 산 염시 개념에서는 중화반응을 통해 물과 염이 생성된다고 설명하며 반응 후 액성은 중성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브뢴스테드-로리 산 염기 개념에서는 산과 염기가 반응한다고 해서 반드시 물이 생성되지는 않으며, 반응 후 중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산과 염기의 각 성질이 약화된다는 관점에서 ‘중화’의 의미가 있다.
단순히 산과 염기가 반응하기 때문에 중화반응이라 할 수 있으며, 반응 후에는 또 다른 산과 염기가 생성된다. 다름 아닌 산의 짝염기와 염기의 짝산이 생성되는 것이다.
브뢴스테드-로리 산 염기는 물질 그 자체로 산과 염기를 판단하지 않고 반응하는 물질에 따라 상대적으로 산과 염기를 판단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중성의 개념이 없다.
논문을 읽으며 단순히 수용액 상황에서만 산과 염기를 판단할 수 있는 아레니우스 산 염기 개념의 한계점으로 인해 수용액 상황이 아닌 다양한 용매와 기체, 고체 상태의 물질을 산 또는 염기로 판단하기 위해 브뢴스테드-로리 산 염기 개념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두 개념은 전제조건부터 관점까지 다 달랐다.
나의 오개념을 깨부순 이 논문을 학생들에게 던져주고 소감문 쓰기를 시켰더니, 논문이 내게 주었던 충격과 비등한 충격을 준 소감문을 받게 된다.
산과 염기 개념이 변천해온 과정을 쿤의 과학혁명, 패러다임을 접목하여 설명해온 아이. 이 아이의 소감문에는 답신을 해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한 달 후 답신을 전하고, 그렇게 우리의 과학 이야기가 꽃을 피우게 된다. 모든 게 감사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교실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학습지가 아닌 활동지를 만들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답을 잘 이해되도록 가르칠까가 아닌 어떤 상황과 질문으로 인지적 갈등을 일으킬까, 인터넷에 찾아도 없는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는, 내게 너무나 든든한, 앞으로도 마음 깊이 든든할 나의 제자를 만나게 해 준 이 논문이 사뭇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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