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2회의 3학년 화학Ⅱ 수업에서 묽은 용액의 총괄성 수업 차례였다.
교과서에는 증기압력 내림, 끓는점 오름, 어는점 내림, 삼투압에 대한 정의와 공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용어 반복의 수준에서 벗어난 개념 설명을 위해 구글과 논문을 뒤져보았다.
그에 따라 이 글은 한국교원대 화학교육과 백성혜 교수님의 글 「이상 용액과 라울의 법칙」과 석사 학위 논문 「한국과 미국 화학 교과서에 기술된 용액의 총괄성에 대한 비교 분석」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1. 이상 용액이란 무엇인가?
이상 용액은 라울의 법칙을 만족하는 용액을 일컫는다.
이 때 라울의 법칙이란, 용액 속 용매의 증기압력(P)은 순수한 용매의 증기압력(Pº)에 용액 속 용매의 몰분율(x(용매))을 곱한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법칙이다.
P=x(용매)Pº
또는 증기 압력 내림 △P으로 식을 다시 나타내면,
△P=Pº-P=Pº-x(용매)Pº=(1-x(용매))Pº
이고 1-용매의 몰분율(x(용매))은 용질의 몰분율(x(용질))과 같으므로 △P는 다음과 같다.
△P=x(용질)Pº
또한 이상 용액은 용매-용매, 용질-용질, 용매-용질의 3가지 상호작용이 모두 똑같은 용액이다. 따라서 용매-용매, 용질-용질 간 상호작용의 합보다 용매-용질 간 상호작용의 정도가 더 커야만 용액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상 용액은 '용액'조차도 만들어질 수 없는 그야말로 이상적인(ideal) 용액인 것이다.
자연 세계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를 정확하게 기술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설명하려면 고려해야 할 변인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은 항상 알 수 없는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과학자들은 무시할 변인들을 찾아냄으로써 근사적인 규칙성을 찾는데 성공하였다.
백성혜_「이상 용액과 라울의 법칙」 中
이상 용액에만 잘 적용되는 라울의 법칙이 무쓸모하게 보이지만,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덧붙이면 실제 용액에도 적용이 가능해진다.
비휘발성, 비전해질 용질이 녹아 있는 묽은 용액이 바로 그것이다.
용매-용매, 용질-용질, 용매-용질의 3가지 상호작용이 모두 비슷할수록 이상 용액에 가까워지고 또 라울의 법칙을 잘 따르게 되는데, 용질의 양이 많아지면, 즉 진한 용액이 되어버리면 용질-용질 간, 용질-용매 간 상호작용의 크기가 커져서 라울의 법칙을 잘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2. 과학 법칙의 재밌는 아이러니
비휘발성, 비전해질 용질이 녹아 있는 묽은 용액을 전제로 하고 라울의 법칙을 다시 기술하면
△P=x(용질)Pº에서 용질의 몰분율(x(용질))의 분모인 용매의 몰수와 용질의 몰수 중 묽은 용액에서는 용질의 몰수가 용매의 몰수보다 크게 작고 무시할 수 있으므로 용매의 몰수만 남게되고 이를 통해 용질의 몰수를 분자로, 용매의 질량을 분모로 하는 몰랄 농도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증기 압력 내림은 몰랄 농도에 비례하는 값이 되고, 용질의 종류에 관계 없이 용질의 입자 수에만 의존한다는 용액의 총괄성의 의미에 부합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용질의 입자 수가 많을수록, 몰랄농도가 클수록, 즉 "진할수록" 증기 압력 내림은 커지겠지만 애초에 "묽은 용액"이라는 전제 조건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용액의 농도가 진할수록 증기압력이 낮아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또 너무 많으면 이 법칙 자체를 따를 수가 없다. 희한하다.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변수들을 단순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전제조건들을 덧붙이다보니 극히 좁은 자연 영역에 대해서만 기술할 수 있게된 것이다.
덧붙여 내가 이해한 바로는, 용액의 총괄성은 농도가 진하든, 묽든 모든 용액에서 나타나지만 라울의 법칙과 같이 딱 정형화된 식을 따르려면 이상 용액 또는 실제 용액 중에서는 묽은 용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용질의 "방해"
내가 가지고 있는 교과서를 비롯한 대다수의 교과서들이 용액의 총괄성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순수한 용매와는 달리 용액에서는 용질 입자가 용매 입자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증기 압력 내림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 용매 분자만 있는 순수한 용매와는 달리 용액의 표면에 용매 분자와 용질 분자가 함께 있으므로 용질이 용매를 방해해서, 또는 용질이 용매의 증발 면적을 좁게 만들어서 라고 기술한다. 표면적은 증발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동적 평형에 도달했을 때 증기 압력은 온도와 압력이 일정한 한 동일하다. 또한 방해의 측면에서라면 입자의 크기가 큰 용질이 용액 속 용매의 증발을 더욱 잘 방해할 것이고 더 큰 증기 압력 내림이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용질의 종류에 관계 없이 용질의 입자 수에만 의존한다는 용액의 총괄성의 의미에 반(反)하게 된다. 따라서 "방해" 측면에서는 증기 압력 내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 책상에 모셔져 있는 앳킨스의 물리화학 책을 꺼내들었다. 간만의 전공 서적은 읽어나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용액의 총괄성은 입자적 측면이 아닌 열역학적 측면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화학 퍼텐셜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화학 퍼텐셜이 분몰 깁스에너지와 같다는 정도에서만 서술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용액의 총괄성은 용질이 존재함으로써 용매의 화학 퍼텐셜이 낮아지는 것에 기인하고 따라서 증기-액체 평형이 더 높은 온도에서 일어나고, 고체-액체 평형은 더 낮은 온도에서 일어나 끓는점 오름과 어는점 내림이 발생한다.
이는 결국 엔트로피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용질이 포함된 용액에서는 순수한 용매보다 무질서도가 높은 상태이다. 따라서 증발을 통해 무질서도를 증가시키려고 했던 순수한 용매와는 달리, 구태여 증발을 통해 무질서도를 증가시킬 필요가 적은 용액에서는 증발이 보다 덜 일어나게 되고, 그에 따라 증기 압력이 순수한 용매에서보다 작아지는 것이다. 증기 압력의 감소는 끓는점 오름을 유발한다.
한편, 용질이 포함된 용액이 순수한 용매보다 무질서도가 높은 상황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했을 때, 무질서도를 감소시키는 어는 현상이 어느 쪽에서 더 어려울까? 어려울수록 온도를 더 낮춰줘야 할 것이므로 어는점 내림이 나타나게 된다.
화학 퍼텐셜은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엔트로피의 측면에서의 설명은 3학년 학생들의 수준에도 꽤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피상적으로 용어를 반복하며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수업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겠는가를 멍하니 생각해본다. 아이들의 머릿 속은 덜 복잡할 것이고 시험 문제도 명료하게 곧 잘 맞히겠지만, 가장 뇌가 활발하고 살아있을 때 인지적 갈등을 일으키는 질문들로 아이들의 뇌를 찌릿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다보면 실재하는 변인들을 무시할 수 없고 이상적(ideal) 상황은 더더군다나 없는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조금은 덜 놀라고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작게나마 있다.
올해의 수업 목표는 용어의 반복으로 피상적 설명하지 않기. 인지적 갈등을 유발하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질문하기. 딱 두 가지이다. :-)
4.
학문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뇌를 쉽게 지치게 만든다. 뇌를 지치게 하는 활동을 유지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장시간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논문을 반절 정도 읽고 지쳐 천장을 바라보는데 우리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쩜 책을 읽을 때도 하나 허투루 읽는 법이 없고 한 문장, 한 문장 생각하고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느라 시간이 오래걸린다던...
뇌나 사람이나 편하고 유혹적인 일에 쉽게 빠지게 마련인데 어쩜 그렇게 학구적인 발상을 하는 데에 지치지도 않는지. 새삼 존경스러웠다. 교학상장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자랑스럽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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