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시험기간 전에는
시험범위까지 다 나가고나면
아이들이 자습할 동안 짬이 난다.
그 짬에 간만에 책을 펴 들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 인터넷 서점에서 내 마음을 이끌었던 책.
“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나의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번민들도,
내 삶을 당장이라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것 같던 일들도
사실은 아주 작은 스노우볼 속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다가 사라진다.
나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고민이나 생각들은
알고 싶어도, 알려고 해도 절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또 내 멋대로 상상하고 판단해버리곤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무형’의 무엇과 싸우고 있었다.
작가는 호주에 살고있다.
지금의 남편과 훌쩍 이민을 결정하고는
한국을 뒤로하고 무엇하나 확실치 않은 호주로 떠나간다.
그렇게 시작된 호주에서의 삶을 읽어내려가다보면
특별한 사건도 없고 화려한 문체도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웃지 않기]
나 또한 잘 웃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흉보지 말자고 다짐했다.
상대방이 내게 더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만을 갖지 말자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나에게 웃어 줄 이유가, 상냥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고통 2_ 불행의 이면에 답하다]
세상이 내 편이 되어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내 편이 되어달라고 원망하는 마음의 문제라는 걸 K 보살은 모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오랫동안 마르지 않는 눈물로 흐렸던 시야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마이 네임 이즈 미나]
오랫동안 타인과 살면서 내가 터득한 삶의 태도는 ‘그러거나 말거나’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들어올 사람은 들어온다.
일부러 멀리 거리 두는 사람, 애써 나랑 친해지려는 사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는 하지 않아도 될 힘든 일을 누군가가 한다.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애써서 얻어야 할 것이 된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역경과 고난들이 결국 한 개인의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와 자산이 된다는 말은 얼마만큼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고생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나 쉬운 선택을 하지 않을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들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금방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내가 청소하려고, 설거지하려고 이 먼 나라까지 온 건 아니야, 나는 그런 힘들고 하찮은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하면서.
내가 힘들 때 언제든지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안온한 세계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더 이상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 돌아갈 곳이 있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만 이곳에 남는다.
어떤 선택이 더 좋고 나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 내고 용기 있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빛이 난다.
[따뜻한 말 한마디]
달이 가득 찼다. 달 주변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무지갯빛 둥근 테, 달무리가 환했다.
우아하고 화사한 달빛 아래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와이와 나의 그림자가 선명했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같이 손잡고 걸어 본다. 나는 이런 순간이 참 좋아.”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이 순간이 달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와이는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순간으로 변했다.
기분 탓인지 달이 더 환하게 보였다. 말 한마디는 세상의 모양도 바꾸는 것 같았다.
...
“나는 이곳에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여기 온 게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어, 가끔.”
“뭘 하든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어딘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였지만, 순간 나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나의 행복을 이토록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
...
“네가 등 돌리면, 너무 외로워져. 모든 사람이 내게 등을 돌려도 괜찮아. 관심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네가 등을 돌릴 때는 정말로 혼자가 된 기분이야.”
나는 그 말에 감동보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바람에 눈물이 났다.
우리는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내이기 이전에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외로운 빈자리에 서로가 꼭 맞아 기쁜 마음으로 함께해 온 거였다.
타인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 함께하는 생활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다.
내 작은 그릇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소명 같은 건 세울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따듯하게 건네는 것만으로도 태어나 그럭저럭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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