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이야기/Booketlist

05.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지음

gongchemi 2020. 8. 19. 22:43




고등학교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깜짝놀랄만한 소식을 들고 온 친구.
사실인지 몇 번을 되물었는지 모른다.

친구의 저녁 일정이 취소되고, 어디를 갈지 방황하다가
책과 커피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찾은 곳은
‘커피는 책이랑’이라는 북카페!!!

사장님은 무심한 듯 친절했고
그리니따 로마는 너무 맛있었으며
공간은 아름다워
그 속의 우리까지 완벽했다.

진열된 책은 판매용 책으로,
구입 후 독서가 가능했으며
내가 고른 책은 마침 친구가 일주일 전 사려했지만 재고가 없어 사지 못했던 책이었다.
친구는 “서른의 반격”이라는 책을, 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골랐다.


첫 이야기 ‘잘 다녀오겠습니다’에 등장하는 빛나 언니가 앞으로의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가는데....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책을 다시 살피니 장편 소설집이 아니라 단편 소설집이었던 것이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이후로 의도치 않은 세 번째 완독(예정) 단편 소설집이 되어버렀다.
단편 소설의 묘미는 아직 알듯 말듯하지만
완독을 향해 나아가보아야지.


오늘 우연히 발견한 북카페는 단골이 될 것 같다.
카페를 나서서 가게 앞에 주차해두었던 차에 올라타려는 우리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네던 커피 사장님(아내 분이 책 사장님 ㅎㅎ)의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만 같아서. :)
참으로 평범하지만 완벽한 하루였다.





그리고 9월 13일. 오늘에서야 책을 다 읽었다.
2030 직장인에 대한 이야기들로 엮여있어서인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8개의 단편이 하나같이 톡톡 튀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
기대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청첩장과 결혼식을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 같은 이야기, ‘잘 살겠습니다’.
SNS 업로드 거리를 우연히 뺏었다는 이유로 월급 전체를 포인트로 받게 된,
요즘 한창 유행(?)인 중고거래 앱으로 돌파구를 찾던, ‘일의 기쁨과 슬픔’.
다소 자극적이었지만 ‘지유’ 캐릭터가 재밌었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하루 아침에 유튜브 스타가 된 음악하는 남자의 이야기, ‘다소 낮음’.
맞벌이 부부와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등장했던, 결말이 개운치 않았던, ‘도움의 손길’.
테이크 아웃 아메리카노 2000원(but 아이스는 4500원이라는)과 그 찰나를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나 현실감 있었고,
첫번째 출근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던,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오피스텔 성매매를 다룬,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렌즈를 통해 현관 밖을 살피는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이 느껴서 오싹했던, ‘새벽의 방문자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얀 할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참으로 다행이었던, ‘탐페레 공항’.





#새벽의 방문자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구김 없는 성품에,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유머 감각. 그리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특별히 흠잡을 만한 단점도 없는 멀쩡한 체격과 무난한 얼굴. 여자는 이 ‘무난하다’는 평균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희소한 것인지를 해가 지날수록 체감하고 있었다.
...
긍정과 부정을 수없이 오가면서 내린 결론은 이 의미없는 질문의 반복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위에 코트를 대충 걸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목적지는 B동 1204호였다. (내게 무의미한, 혹은 해가되는 반복을 끝내려면 때론 결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탐페레 공항
연봉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기뻤다. 방송국이고 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 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피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녹록치 않은 과정들을 보며, 한 때 피디를 꿈꿨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고,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참 소중한 것이었다.)
...
Do not bend (Photo inside) 구부리지 마시오 (사진이 들어 있음)
말 그대로 노파심이라는 게 이런 걸까. 사진이 지구 반대편 먼 길을 거쳐가는 동안 행여나 구겨질까, 노인은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나는 시리얼 상자를 가위로 자르고, 그것을 풀로 사진의 뒷면에 단단히 붙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얀 밤, 태양이 뭉근한 빛을 내는 창가에 앉아 가위와 풀과 사진 그리고 편지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더듬거리는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을.
...
한줄 한줄 읽어내려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한 미안함의 눈물이 자꾸 흘렀다. 편지의 끝에는 연락하고 지내자는 말과 함께 숫자 열세개가 적혀 있었다. 노인이 전화번호까지 적어줬었어? 왜 나는 이런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대체 왜.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 늦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놓치지 말도록! 노력하자.)


#작가의 말
소설을 쓰는 일, 그건 내 오래고 오랜 비밀이었다.
...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나의 일부를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 내가 자초한 일이면서도 - 한없이 외로웠다.
...
나는 겁이 많고, 걱정이 많고, 좀처럼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나보다 씩씩하고 나보다 멀리 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더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으로서는 정말, 계속해보겠다는 마음, 계속 써보겠다는 마음, 그 마음밖에는 없다.
그게 무엇이든,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한없이 외로웠다.’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요즘들어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옆에 사람이 있느냐 없으냐와 관계없이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란 게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로지 ‘나’만이 오롯이 이해할 수 있으므로 필연적인 외로움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막연하게 대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버킷리스트가 있다.
언젠가 책을 출판하는 것.
이 책을, 그리고 마지막 장류진 작가의 말을 읽고는 그 책이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처럼 자소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무엇이든, 계속 쓸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올해 시작한 블로그지만 이 조차도 이 공간에 글을 쓸 생각을 하면 괜시리 설렌다.
공부하고 실행하고 생각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펼쳐보인다는 것은 꽤 설레이고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