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호흡이 긴 장편소설에 비해
무언가 시작될 듯하면 엥?! 하고 끝나버리는 단편소설은
읽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팬심으로 읽었던 '당신의 조각들'이라는 타블로의 단편소설 이후
내가 완독한 두번째 단편소설이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무료로 대여해주어 읽게된
첫번째 e-book이다.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는 작가의 소개글에 걸맞게 단편집 속에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정적,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신화의 해방자가 제일 재미있었고
단편집 제목과 같은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가 가장 좋았다.
평일에는 영혼 없이 복지센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일요일 오후 6시까지
이틀만 '살아있다'는 주인공 김현.
월요일부터 금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일 마음 편히 늦잠 잘 수 있고 주말을 이틀이나 앞두고 있는
금요일 밤은 잠들기 아깝다고 자주 말하는 우리 엄마 생각도 났다.
그래서 소설 속 김현과 같이 사람들은 매일이 금요일이기를 바라며
금요일 출근길부터 신이난다. TGIF,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외치며.
그런데 현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금요일 밤에 잠들었다 일어나면 다시 금요일 아침이 왔다.
6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김현의 의식에 금요일 외의 6일은 없었다.
더 이상 일주인 간의 황홀한 기대감도 사라져버렸다.
김현은 자취방 구석에 노트북을 설치해 자신의 6일을 녹화해보기로 한다.
14기가바이트 상당의 동영상에 녹화되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기괴하면서도 무섭고, 충격적이면서도 참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토요일 아침 7시에 현은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말의 주저함 없이 상체를 직각으로 일으키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옛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뻣뻣한 강시나 좀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화면 속의 현은 그 상태로 멍청히 앉아 있었다.
..중략..
가만히 앉아 있는 현은 두 손을 허벅지 위쪽에 살며시 올렸으며, 허리는 완전히 일자로 폈다. 약간의 거북목 증세가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목을 편 자세였다. 보기만 해도 피로했다.
..중략..
이어서 평일의 자신을 바라본 김현은 더욱 미칠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미 미쳐 있지만서도. 월요일에서부터 목요일까지 그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아서, 언뜻 비치는 창문 바깥의 풍경으로만 서로 다른 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금'이라 칭하며 5일의 고된 노동 후 찾아오는 금요일 밤,
연이은 이틀의 주말만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일요일 오후 6시부터 금요일 오후 6시까지 죽느니만 못해 사는 세상과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일요일 오후 6시까지 유일하게 사는 세상의 경계를 다루고자 했던 게 아닐까?
두 세상이 경계를 허물고 무너져버리자
금요일이 금요일 같지 않아졌다.
김현은 일주일 중 금요일에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말을 앞두었다는 그 쾌락은 평일의 고난과 시련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행복이란건 상대적인 감정이다.
코로나 덕에(?) 작고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 것처럼
불행이 있어 행복한 순간을 감지하고 감사할 줄 안다.
평일의 힘듦과 고단함이 있었기에
출근 걱정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금요일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반대로, 금요일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의 월화수목도 행복할 순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소중한 하루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행복하고자 노력해본다.
아이들이 없는 지금, 아이들이 내 행복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 없는 학교는 정말 앙꼬없는 찐빵..
얼른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소설 속 김현처럼 반복되는 매일매일이 영혼 없고 무의미하긴 정말 싫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지만
인간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존재니까.
(그나저나, e-book으로 책 보는 거 꽤 재밌다! 알라딘 서재에 책이 꽉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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