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이야기/day by day

3주간 10문장 글쓰기 모임 with 하현 작가님

gongchemi 2020. 10. 25. 20:54

 

 

 

일상에 균열을 만들 새로운 것들을 찾던 중

하현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걸 발견했다.

3주간, 작가님이 제시해주는 주제로 10문장씩 쓰는 글쓰기 모임.

매일 마감 시간을 지켜 완수하면 내가 쓴 글을 엮어 수제 바인딩 북을 선물로 준다고 했다!

수제 바인딩 북이라니... 더욱 솔깃해져서는 바로 신청을 하고 입금을 했다.

 

3주가 훌쩍 지난 지금,

바인딩 북은 첫째주에 일찌감찌 물건너 갔지만... ㅠㅠ

3주간의 글쓰기가, 매일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한 경험이,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엿보고 또 나의 세계를 엿보이는 일이 꽤 재미있었다.

 

아래는 3주간 내가 쓴 글을 엮어 옮긴 것이다. 

 

 

 

 

나의 습관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침 출근길 볼륨을 한껏 높인 음악에 춤을 곁들이며 운전하던 내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이유는? ‘그’로 어지럽혀진 복잡하고 시끄러운 머릿 속을 잠재우고 싶어서!

라디오 DJ의 경쾌한 목소리와 사람들의 문자 사연을 듣고 있자면 차에서 내릴 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맞다! 나도 한때 라디오 PD가 되는 것을 꿈꿨었는데. 야자 시간, mp3에 꽂힌 이어폰으로 주파수를 맞춰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를 들으며 한밤에 마음을 간질이는 목소리와 노래,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내 손에서 피어나가길 꿈꿨었다. 그래, 라디오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어린 시절의 꿈이자 그 시절의 추억.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이 발달하더라도 라디오는 없어지지 않을 아날로그 중 하나가 아닐까? 사람들에게 영원히 추억될 현재진행형 아날로그 라디오! 라디오 덕분에 내일 아침 출근길이 기대된다.

 

 

나의 서랍

내 책상은 늘 더럽다. 덕분에 잔소리가 항상 따라다닌다. 어릴 땐 엄마, 독서실에선 친구들, 직장에선 상사. 그럴 때면 대꾸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책상은 더럽다고, 무질서 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다고.

견디다 못해 책상 정리를 할 때면, 그 짐들이 모조리 서랍으로 간다. 그래서 나의 서랍도 역시 더럽다. 하지만 서랍의 가장 깊숙한 곳엔 가장 소중하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이 들어있다. 어릴 적 다이어리, 지갑, 편지, 심지어는 시험지까지도. 그런 소중한 것들이 서랍에 그득그득하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나의 자랑

나는 뒷모습만 보고도 누군지 아는 재주가 있다. 뒷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 걷는 자세, 행동 거지, 패션 스타일 등을 종합하여 누군지 알아차린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유심히 보고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세상에서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옛날에 알고 지내던 언니가 ‘사람은 책과 같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각자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람은 책과 같아서 책 표지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말며,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사람을 알아가자고.

세월이 갈수록 마음에 스미는 말이다. 내 맘 속 서재엔 읽고 싶은 책이 가득이다.

 

 

나의 취향

취향이 비슷한 ‘그’를 만나 설레었다. 옷 입는 스타일, 즐겨보는 영화 장르, 듣는 음악에서 ‘그’의 취향을 공유할 때마다 기뻤다. 하지만 ‘그’는 나의 취향에는, 그리고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취향이 비슷한 ‘그’를 내가 찾아온 짝이라 믿어오던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다가 ‘그’가 아닌 나의 취향이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뭐였더라? 30여년 살아오면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뒷프린팅이 있는 맨투맨을, 아메리카노보다 속이 덜 쓰린 라떼를, 팝송보단 가사에 공감할 수 있는 한국 노래를, 스키니보단 통바지를 좋아한다.

평생 함께 가야할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업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첫 걸음이다.

 

 

나의 두려움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를 떠날까 두렵다.

사람에게 한 번 마음을 열면 한없이 진심을 다하는 나. 그래서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때엔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무릇 관계란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것을 알기에, 수많은 상황과 시간이 맞물려 이뤄진다는 걸 알기에 언제까지고 떼를 쓰며 울고 있을 순 없었다. '남을 사람은 태풍이 몰아쳐도 내 곁에 남고, 떠날 사람은 바짓가랑이를 붙들어도 결국 떠난다.'는 말을 되새긴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나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잠잠해진다.

앞으로 누가 내 곁에 남고 누가 또 떠날지 모르겠지만(누가 알려주면 좋겠지만), 돌아올 마음을 기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그러다보면 곁에 사람을 남기기 위해 '나'를 잃을 일도, 떠나가는 인연에 많이 슬퍼할 일도 없겠지?

그렇게 '관계'에 무덤덤해질 나 자신이 두렵다.

 

 

안하던 짓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마스크는 뗄레야 뗼 수 없는 생필품이 되었다. 현관문을 나서다가도 허전한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마스크를 깜빡한거다. 이제껏 하얀색 일회용 마스크만 쓰다가 오늘 처음 검정 면마스크를 착용했다. 검은색에서 풍기는 뭔가 시크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어제 손빨래를 해서 코끝을 간질이는 비누향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말을 할 때 면마스크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호흡이 가빠졌다. 귀가 아프지 않아 좋았지만, 면마스크를 쓰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일회용 마스크냐 면마스크냐..... 아니, 난 노마스크가 제~일 좋다. 어서 마스크 없이도 외출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평범했던 일상이 너무도 그립다.

 

 

오늘 버린 것

사람에 대한 글을 그만써야겠다...했는데,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오늘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월요일부터 이어진 야근. ‘그’ 사람만은 지친 내 마음을 알아주고 헤아려주길 바랬는데. 터무니 없는 기대였다. 사람은 절대 내 마음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마음은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란 걸 잘 아는데. 내 마음이 마음 같지 않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좋겠다.

 

 

17,800원으로 하고 싶은 일

17,800원.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결제에 익숙해진 후 돈을 쓸 때 이렇게 구체적인 금액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얼하면 좋을까?

해야할 일과 고민이 많은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어딘가에 몰입하고 싶다. 어두운 조명과 스크린, 서라운드 사운드.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혼영’에 12,000원을 지출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가장 좋아하는 블랙밀크티에 펄 추가, 얼음 50 당도 50으로 맞춰진 공차를 마시며 가을 밤을 만끽하고 싶다. 이제 남은 돈은 1,600원. 어릴 땐 1,600원으로 떡볶이에 슬러시에 피카츄 꼬지에 양손 한 가득이었는데, 이젠 1,600원으로 살 수 있는 게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에잇, 한켠에 남겨두고 어디에 쓸까 고민도 함께 남긴다.

 

 

사진첩 속 이야기

지나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카메라를 켠다.

소중한 사람들과 깔깔거릴 때. 식탁 위 음식을 보며 엄마의 사랑을 느낄 때. 유난히 하늘이 아름답고 푸르를 때.

나중에 사진첩을 열어 사진 하나 하나를 넘겨보며 정말 좋았던 순간의 사진에는 하트를 눌러 즐겨찾기를 해둔다. 즐겨찾는 사진첩을 보며 '이 때 정말 좋았지.', '이거 정말 맛있었는데...', '와 예쁘다.'하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외장하드로 들어가버리면 영영 보지 않을테니 용량이 없어도 가장 큰 용량을 차지하는 사진들을 섣불리 지우지 못한다. 디지털로 찍어도 결국 아날로그로 저장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사진은 자주 볼수록 그 때의 순간이 되살아나고 행복감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귀찮아서 실행을 잘 못하지만, 부지런히 인화해서 한 켠에 두고 과거의 행복을 끌어다 써야겠다.

 

 

오늘의 식탁

캥거루 족인 나는 아직도 엄마가 아침밥을 차려주신다. 늘 반찬이 없다는 엄마의 걱정과는 다르게, 내 눈엔 진수성찬이다. 사실 차려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죄송하다.

우리 딸 영양가 있는 걸 먹어야 한다며 온갖 건강정보프로그램에 나온 정보들을 급히 휘갈겨 쓴 포스트잇이 주방에 가득하다. 계란은 하루에 3개까지만, 꼭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는 비타민, 유산균, 오메가3, 냉동닭고기는 몸에 안좋다... 등등. 포스트잇에 적힌 정보들은 그대로 그 다음날 식탁에 반영된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식탁을 보자면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를 든다. 엄마의 마음까지 사진에 담을 순 없지만, 사진을 찍고나면 꽤 만족스럽다.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면 우리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글쎄, 자신이 없다.

 

 

편지,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

안녕? 2020년 누구보다 힘들었을 나에게 편지를 쓴다.
두 달 남짓 남았지만,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해보자면 짝사랑, 생산성, 도전, 사춘기 정도가 될 것 같아.

좋아하는 ‘마음’이 시키는 일들은 그 누가 말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와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새삼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에 놀라곤 했지.

‘그’의 마음에 드는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혹은 ‘그’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 생산성이란 키워드를 목표로 직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보고자 했었지. 시작은 ‘그’였지만 한 발짝씩, 나름대로의 결과를 내면서 꽤 마음에 드는 내가 되어 기분이 좋아. 전문성에 대한 노력은 새로운 도전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과에 상관없이 훌륭한 자산이 될 경험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2020년의 매일 매일, 고민하고 노력하고 성찰하며 서른의 사춘기를 보내게 될 줄이야!
올해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책의 제목으로 이 짧은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해.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리뷰, 하나 둘 셋 마이크 테스트

<아이패드 프로 12.9>
11인치와 고민 끝에 구입한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 처음 받아들었을 때 너무 크다라는 생각도 잠시, 여러 창을 분할해서 쓰면서 역시 큰 걸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블루투스 키보드와 합체하면 마치 노트북을 쓰는 것만 같다. 토독토독 자판을 누르면 화면에 나타나는 활자들이 기분 좋게한다.
거치대에 세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때, 음향은 크으... 정말 프로답다. 펜슬과 함께라면 이번엔 스케치북으로 변신해 그림이든 다이어리든 무엇이든 슥삭슥삭 내가 원하는 건 뭐든 쓰고 그릴 수 있다.
이쯤 읽었다면 딱 하나의 단점을 눈치 챘을수도?
안타깝게도 패드‘만’ 사서는 위와 같은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꼭 블루투스 키보드와 거치대, 펜슬을 함께 사야한다. 
휴우 정말 개미지옥이 따로없다.

 

 

일기,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

오늘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 마음을 기울인 사람이 다른 이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걸 직접 목격하는 일.
평소 느긋한 성격의 그가, 내게 올 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총총총 걸음으로 뛰쳐나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나도 그 상대가 되고 싶어 1년이 넘도록 이렇게 저렇게 노력했지만, ‘관계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진리만 깨닫게 되었다.
관계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이미 다 정해진 인연이란 게 있는 거라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의 인연인지 아닌지 이마에 번쩍번쩍 표시해주는 이마 전광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럼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내 사람인 사람들에게만 애정을 쏟으면 될텐데.
왜 알려주지 않고, 알지 못하는 걸까. 인연이란 게, 관계라는 게 참 얄궂다.
오늘의 그 장면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프다.

 

 

추천사, 구체적인 사랑의 말

에픽하이 정규 4집 앨범 추천사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Fly라는 곡으로 종전의 히트를 쳤던 에픽하이가 4집 앨범을 발매했다.
음악 앨범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 무려 27곡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홍보의 일면에 내세울 때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오로지 팬심으로 앨범을 구입했고, 온통 검은색의 표지 안에는 CD가 두 장 들어있었다.
만약 CD가 아닌 테이프였다면, 정말 테이프가 늘어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여러 번 앨범을 되풀이하여 들었고, 꼭 트랙 순서대로 들었다. 이 앨범 덕에 앨범이란 건 아티스트가 의도한 기승전결이 담긴 작품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힙합은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라 시와 같은 음악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 앨범을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에픽하이 3명의 남자가 27곡에 꾹꾹 눌러담은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 또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
아, 오랜만에 꺼내 들어야겠다.

 

 

끝과 시작, 자유주제

TV에서 방영한 콘서트에서 나훈아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 끌고 가야 합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겁니다. 안 하던 짓을 해야 세월이 늦게 갑니다."
안 하던 짓, 새로운 경험 중 하나가 바로 10문장 글쓰기 모임이었다. 
너무 잘 쓰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하현님의 첫 번째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을 시작으로 3주간 10문장 쓰기를 시작했다. 주제에 따라 10문장이 길게도, 또는 짧게도 느껴졌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해본 것 모두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내 삶에 일어난 이 작은 균열이 앞으로 어떤 길을 비출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작과 끝이 아닌 끝과 시작이라는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 지금, 무엇보다 좋은 예감이 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말만 골라 살포시 남기고 간 댓글이 좋은 예감에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3주간의 매일을 함께한 우리 모두의 끝과 머지 않을 미래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시작을 열렬히 응원한다.